서 말의 구슬보다 한 톨의 씨앗으로 족하게 하소서

2013. 8. 31. 22:13catholic/보편된이야기

 

 

 

 

  성경 말씀을 무슨 복음 몇 장 몇 절에 나오는 말씀이라는 것까지

 

빠삭하게 외고 있는 사람을 보면 여간 부러운게 아닙니다.

 

마치 학교 다닐 때 반에서 전 과목에 걸쳐서 막히는 것 없이

 

공부 잘하는  아이가 무작정 부럽고 존경스럽듯이 말입니다.

 

  그런 사람은 또한 완전히 무장한 무사와도 같아서 은근히 두려움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과 말로 맞붙는다는 것은 맨몸으로 칼과 방패를 동시에 지닌 사람과

 

대결하는 것마치나 승산이없는 노릇이니까요.

 

입씨름할 생각이 없다고 해도 그런 사람 앞에서 보통 사람은 초라해지고 기죽기가

 

십상입니다.

 

마치 몇 알의 구슬밖에 없는 사람이 온갖 보석을 꿰어서 아름답고 찬란한 장신구

 

를 만든 사람 앞에서 느끼는 선망과 열등감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도대체 어떤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 상상을 해볼 때,

 

아무리 미련한 머리로도 예수님 말씀과 하신 일을 남김없이 외고 있는 사람일 거란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하늘나라 들어가는 관문에도 대학에 들어가는 관문처럼

 

지능이나 암기 능력을 시험해 보는 고사장이 있을 것 같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말씀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서 가장 보잘것없

 

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는 구절입니다.

 

그 구절은 저에게 있어서 좋아하는 것 이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그 구절을 발견하고 매혹되기 시작한 것이 결국은 먼 훗날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약속으로 이어졌으니까요. 그러니까 그 구절은 저에게 있어서 

 

당신과의 첫 사랑이자 당신으로 통하는 관문이었던 셈이지요.

 

 

 

 

 그밖에도 물론 좋아하고 어루만지고 음미하는 구절이야 많지요.

 

그러나 가장 좋아하는 말씀조차도 그 말씀대로 행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집에 오는 손님도 옷 잘 입고 거만한 사람에게는 제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대접하고 싶어서 절절 맵니다. 우리 사는 게 혹시 초라해 보일지도

 

모른다는 열등감으로 꽃까지 사다 꽂아 놓고 아양을 떨 적도 있구요.

 

그러나 가난하고 근심 있어 보이는 친지가 찾아오면 아무거나 있는 대로 대접하고

 

혹시 아쉬운 소리라도 하면 어찌나 경계하는 마음까지 생겨 요새 불경기라는 말로 미리

 

연막을 치기도 합니다.

 

 

 

밖에 나가서도 마찬가집니다. 돈 많고 잘난 사람들과 유쾌하고 고상한 대화를 즐기노라면

 

이 세상에 못사는 사람,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싫어집니다.

 

  발 고린내 나는 사람은 내 집에 들이기 싫고, 버스나 전철 안에서는 땀내 나는 사람 옆에

 

서는 것도 싫고, 정체 모르는 사람에게는 콘크리트처럼 딱딱하게 굽니다.

 

그게 제 정직한 마음입니다.

 

 

 

 

  전 예수님의 말씀을 매우 귀하게 여기고 사랑합니다. 보석처럼요.

 

그러나 생명으로 비긴다면 한 알의 보석이 어찌 한톨의 밀알만이라도 하오리까?

 

움트지 않는 신앙을 어찌 참 신앙이라 하겠습니까.

 

 

 

 

  주여, 생명으로 움트라고 뿌리신 넉넉한 씨앗 중 겨우 몇 알을,

 

그것도 고작 구슬처럼 겉에다 달고 싶어하는 이 어리석고 딱딱한 마음에

 

작은 균열이라도 가게 하소서. 저에겐 그것이 곧 기적이 되겠나이다.

 

 

 

 

                                                                                                                  <마태 13, 1-23>

                                                                                           박완서『옳고도 아름다운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