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

2012. 2. 18. 16:02family/행복한 이야기

시래기/도종환

저것은 맨 처음 어둔 땅을 뚫고 나온 잎들이다

아직 씨앗인 몸을 푸른 싹으로 바꾼 것도 저들이고

가장 바깥에 서서 흙먼지 폭우를 견디며

몸을 열 배 스무 배로 키운 것도 저들이다

더 깨끗하고 고운 잎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가장 오래 세찬 바람맞으며

하루하루 낡아간 것도 저들이고

마침내 사람들이 고갱이만을 택하고 난 뒤

제일 먼저 버림받은 것도 저들이다

그나마 오래오래 푸르른 날들을 지켜온 저들을

기억하는 손에 의해 거두어져 겨울을 나다가

사람들의 입맛도 바닥나고 취향도 곤궁해졌을 때

잠시 옛날을 기억하게 할 짧은 허기를 메꾸기 위해

서리에 맞고 눈 맞아가며 견디고 있는 저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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