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 화암홀에서 열린 문정현 신부 헌정공연에 소설가 공선옥 씨가 출연해 헌사를 바쳤다. 공 씨는 문 신부가 자주 분노하는 것도 눈물이 많은 사나이이기 때문이라고 잔잔히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공 씨는 편지를 통해 눈물 많은 사나이 깡패 신부의 멋진 하얀 수염이 오래오래 휘날리도록 몸 아프시지 말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공선옥 씨가 문 신부에게 바치는 편지 전문을 싣는다. - 편집자 주
저는 사실 문 신부님을 잘 알지 못합니다. 제가 문 신부님과 시간을 같이 보낸 적도 없고 만나서 깊이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습니다. 단지 저는 신부님을 늘 먼발치에서 보거나 소식을 듣거나 했을 뿐입니다. 신부님이 군산 미군 비행장 때문에 비행장 근처로 이사 가서 싸우신다는 소식, 또 대추리로 이사 가신 소식, 다음으로는 용산으로 거처를 옮기신 소식, 그런 소식을 듣고 살다 보니 제가 마치 신부님을 굉장히 잘 아는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신부님을 잘 모릅니다. (웃음) 한겨레 신문에 신부님 이야기 나온 것을 보고 어린 시절 구술하신 걸 읽으면서는 신부님이 어려서부터 싸움꾼 기질이 있기는 있으셨구나 하면서도 또 언뜻 이 신부님은 굉장히 눈물이 많으신 분이다 생각을 했습니다. 신부님이 폭력과 억압과 무시의 정글 구조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때문에 분노하시는 것은 바로 신부님이 눈물이 많은 사나이이기 때문이 아닌가요? (웃음)
눈물 많은 사나이 문정현 신부님은 또한 웃음도 많은 것 같습니다. 신부님이 지치지 않고 분노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배경은 어쩌면 신부님의 그 천진난만한 웃음이 아닌가 합니다. 팸플릿에도 나와 있듯이 (웃음) 저는 신부님 같은 신부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박래군 씨가 문정현 신부님 헌정 공연을 한다며 저를 초대했을 때 저는 그게 어떤 공연인지 왜 하는지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오직 박래군 씨가 저를 불렀고 문정현 신부님 이름자가 들어간 공연이란 이유만으로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래서 나중에서야 이 공연이 인권센터를 만들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는 취지로 열리는 공연임을 알았습니다.
어쨌든 무슨 이유로든 상관없이 박래군 씨도 그렇고 문정현 신부님 또한 저로 하여금 그 인간성의 매력 앞에 꼼짝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으신 남자들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세상에 어떤 누가 그렇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치의 계산도 없이, 이것은 시방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 여겨지는 곳에 그토록 이나 빠르게 그토록 이나 열정적으로 달려가실 수 있겠습니까? 저만 해도 거기 가면 당장에 내 몸이 고달플 것을 생각합니다. 내 돈 들어갈 것을 먼저 생각합니다. 거기 가면 당장에 나같이 제 몸과 돈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 각오까지도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내가 거기 가도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지금 눈물 흘리는 사람은 앞으로도 눈물 흘릴 것이라는 악마의 속삭임과 싸워야 합니다.
박래군 씨가 전태일은 손톱 밑에 박힌 가시라고 말했더군요. 내 몸 고달픈 것, 내게 이익 오지 않을 곳으로 한치의 망설임 없이 달려가는 사람들이 제게는 바로 손톱 밑에 박힌 가시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박래군이나 문정현 신부님도 그런 존재들임에는 분명한데도 이상하게 불편함보다는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분들입니다. 그들이 그처럼 의롭지 않은 것에 강하게 저항할 수 있는 힘은 바로 그들 속에 한없이 부드러운 눈물이 샘솟기 때문이라는 것을 제가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누구는 문정현 신부님을 깡패 신부라 한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문정현 신부님을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평화로운 노년을 즐기게 해 드려야 마땅한데도 그러지 못하고 깡패 신부라는 소리를 듣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슴 아픕니다. 평화주의자 문정현 신부님을 깡패로 만들고 깡패로 살게 하는 오지게도 잘난 대한민국이긴 하지만, 그리고 그것이 가슴 아프기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 시대 사람들이 깡패 신부를 가질 수 있다는 게 그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까짓것 눈물을 위해 사랑을 위해 깡패가 아니라 깡패 할애비 소리를 듣는다 한들 무엇이 대수겠습니까?
신부님, 신부님 분노의 눈물, 사랑의 눈물, 눈물의 신부님. 당신 오늘따라 왜 그리 아름다우십니까? 명색이 깡팬데 그렇게 아름다워도 되는 겁니까? (박수) 문정현 신부님 그 하얀 수염 멋지게 휘날리는 모습 우리가 좀 더 오래오래 볼 수 있도록 몸 아프시지 말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