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holic/보편된이야기

누이를 위한 뜨거운 기도

박알버트 2010. 7. 14. 14:04


누이를 위한 뜨거운 기도

워낙 자금(自禁)이 없는 놈인지라 또 술판에 어울렸다.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였다.
몸이 별로 좋지 않아 일찍 잠자리에 들었더니.
신새벽에 눈이 뜨였다.
심심해서 컴퓨터를 켜고 아무 블로그나 카페를 기웃거렸다.
그런데 어느 웹페이지를 열자 시선이 멈추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들리는 음악과 함께 그 곡에 얽힌 사연 때문이었다.

1972년, 우리 모두가 참 가난한 때였다.
그때 사제의 길을 걷기 위하여 신학교를 다니다 쫓겨나온
스물 일곱의 한 청년이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퇴교에 충격을 받아 혈압으로 쓰러지셨다가 세상을 떠나신 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여동생이 불쑥 그에게 " 오빠, 내일 아침 수녀원에 입회하러 가요."하고 말한다.
평소 동생의 수녀원 입회를 극구 반대하고 만류했던 그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그 순간 그는 당혹감보다는 걱정에 휩싸였다.
저렇게 못 생긴 수녀를 누가 따를 것이며, 저렇게 건강이 나쁜 아이가 그 어려운 수도의 길을
어떻게 걸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걱정은 곧 뜨거운 기도로 바뀌었다.
자신도 모르게 동생 방에 앉아 울면서 하염없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우연히 책상 아래에 있는 휴지통에 시선을 멈추었다.
깨알 같은 글씨가 적힌 종이 조각들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동생이 곧 불에 태워버릴 일기장을 찢은 것이었다.
얼른 종이 조각 몇 개을 꺼내 보았다.
'주여 당신 종이 여기 왔나이다.'란 내용의 글이었다.

그날 밤 그는 즉시 그 글에 곡을 붙여, 이튿날  수녀원으로 떠나는 여동생의 가방에 넣어 주었다.
한 달 뒤 수녀원에서 편지가 왔다.
여동생이 보낸 편지에는
"오빠, 수녀원에 오던 날 오빠가 만들어 준 노래를 부르며 울었습니다.
다음 날에는 동료 입회자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눈시울을 붉혔고,
그 다음 주일 날에는 모든 수녀님들이 울먹이며
이 노래를 미사 봉헌 때 불렀습니다."라는 사연이 있었다.

이리하여 가톨릭 성가 218 번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이 성가는 사랑스러운 여동생이 수녀원에 입회할 때,
주님께 저 못난 동생을 잘 보살펴 달라는 오빠로서의 뜨거운 기도를 담은 것이다.
현재 작사가인 이분매 베난시아님은 서울 포교 베네딕도회 소속 수녀로,
작곡가인 이종철 베난시오님은 신부로서 주님의 길을 굳건히 걷고 있다고 한다.